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틴 루터 킹 (문단 편집) == 여담 == * [[마르틴 루터]]와는 다르다. 마틴 루터 킹이 마르틴 루터의 이름을 딴 것이다. ‘루터’는 독일어 발음이므로, 킹 목사의 모국인 미국 영어 발음 [ˌmɑːrtn ˌluː'''θ'''ər ˈkɪŋ]대로라면 ‘마틴 '''루서''' 킹 주니어’라고 읽어야 하고 [[외래어표기법]]에 의하더라도 그와 같이 적어야 한다.[* 언론 기사나 교과서 등에서는 ‘마틴 루서 킹’이라고 적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르틴 루터의 영향인지 이미 ‘마틴 루터 킹’이라는 발음과 표기가 한국 내에서 널리 통용되어 이 항목 표제는 ‘마틴 루터 킹’으로 하였다. 물론 ‘마틴 루서 킹’으로도 본 항목에 들어올 수 있다.[* 비슷한 예로 슈퍼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빌런 렉스 루터도 원래는 렉스 루서라고 읽어야 한다.] * 미국에는 이 사람 이름을 딴 거리가 많다. 주로 흑인들이 많은 마을들에 이 거리 이름이 붙어 있다. * [[마이클 조던]]이 토크쇼 진행자 제이 레노와의 인터뷰 도중 '한번 만나보고 싶은 과거의 인물'로 꼽았다. * 공화당원이었다.[* 다만 아니라는 설도 있다. [[https://time.com/5764282/martin-luther-king-jr-politics/|#]]]킹이 사회운동을 하면서 좌파 운동가와 친하게 지내거나 스스로 좌파 운동가를 표방했다는 점을 보면 좀 의아하겠지만 [[대공황]] 이전까지만 해도 링컨 대통령이 공화당원이었다는 점때문에 미국 내 흑인들은 공화당 지지성향이 강했고, 대공황 이후로 그래도 흑인들의 대다수가 일자리 제공 및 복지 정책 시행 등의 이유로 민주당을 지지하게 되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인종차별을 주도했던 미국 남부 백인들도 이때까지는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은 공화당을 지지하는 흑인들도 아직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1960년대 민권 운동 당시에 공화당이 미온적으로 대처하면서 한 편으로는 이를 내세우면서 [[남부전략|미국 남부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략]]했고, 반면 [[존 F. 케네디]]나 [[린든 B. 존슨]] 같은 민주당 진보 정치인들은 민권법을 밀어붙이고[* 킹도 대선 과정에서케네디를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존슨을 지지했다.] [[스트롬 서먼드]]같은 일부 민주당 [[딕시크랫]] 정치가들은 이런 움직임에 반발해 남부 공략에 힘을 쏟던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기는 등의 정치적 변동이 있음에 따라 공화당 성향의 흑인들도 대다수가 민주당 지지로 돌아서고 반대로 남부 백인들이 공화당 지지로 돌아서면서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이러한 공화당과 민주당의 상황 변화를 대변하는 사례가 바로 마틴 루터 킹이 재직했던 에벤에셀 침례교회의 담임목사 출신인 라파엘 워녹이 조지아 주에서 민주당 당적으로 미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것. * 정치적으로는 미국 정부와 충돌이 심했는데, 일단 FBI에서 킹과 미국 공산당 내의 연계활동에 대해 특히 경계했다. 이유는 저명한 뉴욕 변호사이자 킹 목사의 조언자였던 스탠리 리바이슨(Stanley Levison)이 미국 공산당과 연계 되어있다는 것과 킹 목사의 다른 동지였던 헌터 피츠 오델(Hunter Pitts O'Dell) 이 미국 공산당의 반미활동협회(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s)에 충성을 맹세한 것에 대해 연관이 되어 있다는 혐의가 있었다. 하지만 1979년 FBI는 증거불충분으로 킹 목사와 반미활동협회 간의 연계가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킹 목사도 공산당과의 협의를 부인했지만 당시 FBI 의장이었던 후버는 루터 킹 목사의 부인을 믿지 않았고 킹 목사도 이에 반발해 후버를 비난했다고 한다. 킹 목사의 사생활까지 테이프와 녹음으로 감시하기까지 했다고.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도 반대해서 당시 대통령 [[린든 B. 존슨]]에게도 위선적인 설교사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은 결국 미국의 재정난 크리와 자존심 시망 효과를 가져왔으니... * 위에 묘사된 FBI와 초대 국장 후버와의 악연 덕에 킹 목사의 암살에 FBI가 개입했는지에 대한 의혹도 있고 미드에서 이전부터 정부의 일에 개입한 비밀요원을 소개할 때 대부분 킹 목사 암살의 진범임을 강조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THE X-FILES|X 파일]]의 담배 피우는 남자. * [[트레키]]들과도 연이 있다. 한창 [[인종차별]]과 [[성차별]] 논란이 극에 달한 60년대와 70년대에 흑인 여성 캐릭터인 [[니오타 우후라]]의 등장이 잦은 걸 두고 NBC의 높으신 분들이 진 로덴베리에게 우후라 캐릭터를 없애라고 압력을 넣고 실제로 우후라의 비중은 거의 없어지기까지 했었다. 이에 우후라 역의 배우 니셸 니컬스는 낙담하고 사표까지 썼었는데[* 그냥 차별 문제로 나가려던게 아니라 브로드웨이쇼를 의뢰받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실제 배우의 전공도 그쪽.], 어디서 소문이 흘렀는지 한 팬이 만나자고 요청을 했었다. 그 팬이 마틴 루터 킹이었다. 스타 트렉이 사람들에게 인종 차별을 극복할 힘을 주고 당신이 분한 캐릭터야 말로 자신이 주장하는 바이니 절대로 역할을 그만두면 안 된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우후라 비중이 늘어나는 건 물론, 스타 트렉은 여러 사회 문제를 은유를 통해 비평하는 단순한 SF쇼 이상의 매체로 자라났다.[* 엄밀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사회 비판을 둘러 말하려고 SF장르로 간 것이었다. '''등장인물을 문제삼자면 우후라 말고도 그 사람들이 거품 물만한 게 수두룩하다'''. 주조종사인 [[히카루 술루]]는 동양인임에도 선장-부선장-기관장 다음의 지휘서열이 4위라서 선장과 부선장이 행성으로 내려가고 기관장이 동력문제로 자리를 비우면 '''자주 지휘권을 넘겨받는다.''' 이소룡이 그린호넷에서 조연인 카이토로 출연한 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였다는 걸 생각하자.] * 2015년에 그의 흑인 민권 운동을 다룬 영화 '셀마'가 개봉했으며 호평을 받았고 데이빗 오예로워가 '마틴 루터 킹'을 맡았다. 셀마는 그가 1965년에 활동했던 [[앨라배마]] 주의 도시 이름이다.[* 정확히는 흑인 투표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기도 했다.] *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킹 목사는 [[기독교 시오니즘|기독교 시오니스트]]였으며 [[시오니즘]] 운동의 강력한 지지자였다고 한다.[* Sundquist, Eric J. (2005). Strangers in the land: Blacks, Jews, post-Holocaust America.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민권운동가이자 사회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킹 목사가 시오니즘을 지지한다니까 의아해할수도 있는데 시오니즘도 여러 갈래의 분파가 존재한다. 서양의 세속적 진보 정치인들도 시오니즘을 유럽 제국주의와 봉건적 이슬람 왕국들에 맞서는 [[좌익 내셔널리즘]]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현실은 건국의 주체가 된 노동시오니즘 지지자 측도 기존 토착민이나 유럽계가 아닌 유대인들에 대해선 인종차별적이였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탄압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차이점이라면 자기네들을 지지하는 무슬림들에게 떡고물을 좀 주는 편이었다는것과 당시 팔레스타인 무장투쟁의 주체가 된 세력이 [[아랍 사회주의]] 계열인 [[파타]]가 주류였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보면 좌파 VS 좌파 구도가 나왔다는것 정도였다는것이다.] * [[가족계획]] 정책의 지지자이기도 했다. "만약 외계인들이 지구에 방문한다면 우리가 인구 과잉이라는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가족계획 정책에 예산을 적게 쓰는 것을 보고는, 자기 행성으로 돌아가서 이 행성은 미래가 어둡고 불확실한 정신나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 보고할 것이다."[* 외계인 이야기가 뜬금없어 보이지만, 이 말이 나온 1960년대는 [[UFO]] 목격담이 시도 때도 없이 보고될 만큼 사람들이 외계인에 관심이 많던 시절이었다. ]라고 할 정도였다. 또한 인구 과잉 문제는 현대의 [[페스트]]에 비견될 만큼 심각한 문제라 평하기도 했다. * 이건 시대상도 감안해야하는 면이 있기는 했다. 마틴 루터 킹이 활동하던 시기의 미국은 출산율이 아직 높았던 시절로, 미국의 출산율이 1명대 후반~2명대 초반수준으로 떨어지는것은 1970년대의 일이었다. 미국의 출산율이 2차 세계대전 종전 시기부터 급속히 증가해서 1947년부터 1964년까지는 합게출산율이 3명을 초과하여서 인구증가 목적으로 이민을 받을 필요가 없는 시대였고,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소련을 비롯한 유럽 각 국가들도 다자녀 가정이 많았던지라 인구증가율이 어느정도 나왔던 시대였다. 현재 저출산으로 골머리를 앓는 동아시아 국가들도 일찌감찌 애를 2~3명 낳는 수준이었던 일본을 빼면 다들 자녀 다섯은 기본으로 낳던 시절이라 연 인구증가율이 2~3%대를 기록할 정도로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21세기 기준으로 생각하면 예측이 어긋나도 한참 어긋나지만 당대에는 그런 얘기를 하는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 --[[http://i.imgur.com/DGfPPDi.png|드디어 그의 꿈이 이루어졌다 카더라]]-- '''어디까지나 농담이다'''. 그의 열망은 역할 바꾸기가 아니라 동등한 인간이 되는 것이었으므로 훌륭한 왜곡형 고인드립 되시겠다. 다만 약간 진지하게 따져 보면, 흑인과 백인이 함께 웃으며 노예제를 풍자하는 역할극을 찍고 노는 것 또한 '''그가 진정으로 원하던, 흑인이 백인과 동등해지는 꿈에 매우 근접한 현실'''이기도 하다. 따라서 마냥 농담이나 마틴 루터 킹의 이상을 왜곡하는 드립이 아니라 그의 꿈의 실현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은 [[에릭 킬몽거(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더 적절한 사람]]을 쓴다. * [[해리 벨라폰테]]와 절친한 친구 사이였고 [[프랭크 시나트라]]의 콘서트를 관람한 적이 있다고 한다. * 아버지와 이름이 같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본 문서의 인물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라, 그 아버지는 마틴 루터 킹 '''시니어'''(Martin Luther King Sr.)라 구분해 부른다. 그러나 주니어 문화가 없는 한국에서는 그냥 마틴 루터 킹이라 통용되는 듯하다. 당장 본 문서부터만 해도 제목이 그냥 [[마틴 루터 킹]]으로 되어 있다. 영미권 자료를 찾을 때 참고하자. --물론 아들이 아버지에 비해 워낙 유명해 그냥 Martin Luther King이라고만 쳐도 거의 대부분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자료만 나오긴 한다.-- * [[마이클 잭슨]]이 본인의 자서전에서 말하길 마틴 루터 킹이 사망했을 때 리허설을 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 거리로 나가서 마틴 루터 킹을 추모하였다고 하며 당시엔 너무 어려서 슬프지는 않았으나 자서전에서 마틴 루터 킹과 그의 유족들을 언급하며 추모하였다. * FBI의 에드거 후버는 마틴 루터 킹이 소련의 사주를 받고 인권운동을 한다고 믿었으나 소련 붕괴 후 밝혀진 진실에서는 소련 정부는 미국만의 인종갈등을 악화시켜 미국체재를 흔들고자 했으나 평화운동으로 인종간의 화해를 주장하는 루터 킹 목사를 싫어하였으며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하자 삼페인을 터트리는 등 기뻐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